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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or swing at 마이홈♥ | dodanha_ss

  2. 청빈예찬

     

     이는 또 무어라 할 궁상이 똑똑 흐르는 사상이뇨 하고, 독자 여러분은 크게 놀라실지 모른다. 확실히 사람이 황금 만능의 천하에서 청빈을 예찬할 만큼 곤경에 빠져 있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이왕 부자가 못 된 바에는 빈궁은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일이니, 사람이 청빈을 극구 예찬함은 우리들 선량한 빈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한 개의 힘센 무기요, 또 위안이다.

     혹은 부유라 하며 혹은 빈곤하다 말하나, 대체 부유는 어디서 시작되는 것이며 빈곤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이냐? 사람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많이 가져야 되고, 사람이 가난하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적게 가져야 되느냐? 그러나 물론 이것을 아는 이는 없다. 보라 이 세상에는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가난하다 생각하며 사실에 있어 또 이 느낌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도배(徒輩)는 허다하지 않은가? 그들은 어느 날에 이르러도 자족함을 알지 못하고, 전연히 필요치 않은 많은 것을 요망한다. 말하자면, 위에는 위가 있다고 할까, 도달할 수 없는 상층만을 애써 치어다 보곤 아직도 자기에게 없는 너무나 많은 것을 헤아리는 것이다. 포만함을 알지 못하고 ‘충분하다’ 하는 아름다운 말을 이미 잊은 바, 그러한 도배를 사람은 도와 줄 리가 없다. 그런데 또 보라 이 세상에는 극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넉넉하다 생각하며, 사실에 있어 또 이 느낌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허다하지 않은가? 이 사람들에겐 명색이 재산이라 할 만한 것이 없음은 물론이요, 대개는 손으로 벌어서 입으로 먹는 생활이 허락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말로 필요한 것조차를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고, 말하자면 밑에는 밑이 있으니까 밑만 보고, 또 이 위에도 더욱 가난할 수 있을 모든 경우를 생각하고,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박(切迫)된 곤궁 속에 주리고 있는가 생각한다. 이리하여 이 위안(慰安)의 명류(名流)들은 마치 그들이 그들의 힘과 사랑을 어딘지 다른 곳에다 두는 듯한 느낌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래가 빈부의 객관적 표준은 있을 수 없으므로, 빈궁의 문제를 쉽사리 규정하여 버릴 수는 없다. 문제는 오직 조그만 주머니가 곧 채워질 수 있음에 대하여, 구멍난 대낭이 결코 차지 않는 물리적 이유에만 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빈부의 최후의 결정자는 그 사람 자신일 뿐이요, 주위에 방황하는 제삼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또한 사람이 참된 부유를 자손을 위하여 남기려거든, 드디어 한이 있는 물질보다는 밑을 보는 재조와 결핍에 사는 기술을 전함에 지남이 없을 것이다. 자족의 취미와 자기의 역량을 어딘지 다른 곳에다 전치(轉置)할 수 있는 정신적 재능이야말로 사람을 부자이게 하는 바 2대 요소이다.

  3. SJK. 화보.